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풍함 사건 (문단 편집) == 배경 == 1920년 복건 남부에 주둔하던 광동군벌 [[천중밍]]은 쑨원의 [[계계군벌]] [[루룽팅]] 토벌의 호소에 따라 루룽팅을 몰아내고 광동을 장악했다. 그와 쑨원은 노선 차이로 갈등이 있었지만 쑨원이 천중밍에게 광동성장과 월군사령관 자리 등을 약속하면서 천중밍은 쑨원을 광저우에 초청하여 1920년 11월, 쑨원은 국회의원들을 이끌고 광저우에 도착하여 2차 광동 군정부를 조직, [[2차 호법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1922년 [[1차 직봉전쟁]]이 발발하자 쑨원은 [[안휘군벌]]의 [[돤치루이]], [[봉천군벌]]의 [[장쭤린]]과 [[직예군벌]]에 대항하는 반직삼각동맹을 체결하여 대대적인 북벌 준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연성자치론자 천중밍은 광동인들의 고난을 가중시키는 쑨원의 무모한 북벌에 반대하며 쑨원의 심복 등갱을 암살하는 등 강경하게 나왔다. 이에 쑨원은 천중밍을 육군부장을 제외한 모든 공직에서 해임하고 독단적으로 북벌에 나서게 되었다. 때마침 1차 직봉전쟁이 직계의 승리로 끝나 직계의 실질적인 수령인 [[우페이푸]]가 중국의 지배자가 되자 환계나 봉계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더 이상 쑨원과 합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천중밍은 [[우페이푸]]와 연계하여 쑨원을 무력으로 축출하기로 결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